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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의 넋을 기리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서 20일 서거 60주기 추모제

김한중 기자 | 기사입력 2019/05/20 [19:30]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의 넋을 기리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서 20일 서거 60주기 추모제

김한중 기자 | 입력 : 2019/05/20 [19:30]

농촌진흥청은 한국 육종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우장춘 박사의 서거 60주기 추모제를 20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전북혁신도시, 전북 완주군 이서면)에서 연다.

 

▲ 한국 육종학의 아버지 우장춘 박사     ©농촌진흥청

 
이 자리에는 전국의 원예특작 분야의 원로 연구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하며, 추모사 낭독, 헌화, 분향, 우장춘 상 수여식 등을 진행한다.

 

우장춘 박사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초대원장으로 재직하면서 1950년대 한국의 농업 부흥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우리나라 원예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1898년 일본에서 태어나 육종 연구에 몰두하던 우 박사는 1950년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1959년까지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 중앙원예기술원장, 원예시험장장을 지냈다.

 

대표적인 연구 업적으로는 배추속 식물의 게놈분석을 시도해 다른 종(種) 간의 교배에 성공한 '종의 합성' 논문이 있다. 이는 세계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다윈의 이론 중 '종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성립된다'는 설을 보충하는 이론이 됐다.

 

또한, 수입에 의존하던 배추와 무의 대량 생산 연구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강원도 감자 개량, 제주도 환경에 알맞은 감귤 재배 등 채소 종자 자급과 식량난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

 

1959년 8월 10일 숨을 거두었으며,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황정환 원장은 "우장춘 박사는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농업 육종의 역사를 새로 세운 분이다. 그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원예 연구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우장춘 박사  

 

▲ 청년시절 우장춘 박사     © 농촌진흥청

우장춘은 1898년 일본 동경에서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나카의 맏아들로 출생했다.

 

극심한 빈곤과 주위의 학대 속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 취직해 18년간 육종연구에 몰두했다.

 

1947년 국내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종자 산업을 해결하기 위해 ‘우장춘 박사 귀국추진위원회’를 설립해 우장춘 귀국 운동을 벌였다.

 

아울러, 우 박사가 귀국하면 바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도록 1949년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창설하기도 했다.

 

1950년 3월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환영회에서 “저는 지금까지는 어머니의 나라인 일본을 위해서 일본인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저는 이 나라에 뼈를 묻을 것을 여러분께 약속합니다.”라고 하면서 조국 재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귀국추진위원회’에서 가족 생활비로 송금한 1백만 엔을 생활비로 쓰지 않고 육종에 관한 서적, 실험용 기구, 각종 종자 등 연구 활동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돌아왔다. 

 

우장춘 박사의 연구소 생활 

 

▲ 우장춘의 지도 아래 페튜니아 교배작업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실습생     ©농촌진흥청

한국농업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우장춘은 먼저 우리나라 농촌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농업시험장을 시찰했다. 낙후된 농촌의 모습을 보고 품종 개발 의지를 굳건히 했다. 먼저, 우량 채소의 고정 품종을 만들어 종자를 대량 생산해서 일반 농민 손에 쥐어주고자 했다.

 

무와 배추에 대한 품종 개발을 시도해 마침내 1954년 진도에서 무와 배추의 원종 종자 39석(약 6,840L)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55년에는 목표 수치에 가까운 보급 종자가 생산됐고, 1956년과 1957년에는 보급 종자의 생산 목표 수치를넘어서 국내 자급이 가능하게 됐다.

 

감자 생산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당시 국내에서 수확되는 씨감자가 바이러스병으로 50~80%가 줄어드는 것을 알아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이 없는 씨감자 원종을 생산해 농가에 보급하기 위한 채종포를 강원도 대관령에 설치했다. 

 

문화포장 수상과 묘비문

 

우장춘은 1957년 부산시에서 부산시 문화상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가 운명(서거 1959. 8. 10.)하기 얼마 전 문화포장을 수여해 업적을 기렸다. 문화포장을 받는 자리에서 우장춘은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라고 말하고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은상 지음 

 

▲ 우장춘 박사 묘비     ©농촌진흥청

불우와 고난 속에 진리를 토파 내어 

종자합성 새 학설을 세계에 외칠 적에 

잠자던 학문의 바다 물결 한 번 치니라 

 

온갖 소채종자 우리 힘으로 길러내어 

겨레를 위하시니 그 공로 얼마던고 

빛나는 문화포장을 웃고 받고 가니라 

 

흙에서 살던 일생 흙으로 돌아가매 

그 정신 뿌리 되어 싹트고 가지 뻗어 

이 나라 과학의 동산에 백화만발하리라.  

<자료 출처: 우장춘과 원예연구(국립원예특작과학원, 2013)>

 

 

우장춘 박사가 한국 원예발전에 공헌한 업적  

 

▲ 개량 배추 원예2호     © 농촌진흥청

가. 채소종자의 자급자족 및 청정 채소‧단경기채소 생산기술 확립

 

채소종자 생산을 위한 원원종, 원종, 시판종의 생산체계를 확립하여 연간 약 3천 석의 종자를 자급자족하고 일부는 수출한다.

 

주한 미군의 신선채소는 거의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인분뇨 사용 금지와 토양의 사전 검사로 기생충을 예방해 청정 채소 생산 방법을 구명했고, 대관령에서 여름 단경기 채소 생산의 기초를 확립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채소를 외국인들에 납품하는 길을 열렸다.

 

우 박사의 초기 연구들은 현재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 육종 기술의 원천이 되었으며, 수많은 후학들이 민간 분야로 진출해 각종 종묘회사의 상용 채소 품종 개발, 수출 기반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

 

골든시드 프로젝트(GSP)를 통한 채소 종자 1억불 수출 달성이라는 목표는 이러한 채소 종자 생산 기술 바탕 위에서 설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채소 작물 자급이 부족한 시절에 수행된 청정 채소의 생산 관련 기반 연구는 현재의 GAP 및 유기 생산 관련 연구와 성과로 이어져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 욕구 충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 감귤류 생산 적지 선정

 

귤은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우장춘은 감귤 생산 적지 선정으로 제주도를 선정했고 연이어 신품종의 도입 및 선발로 감귤 생산의 기반을 확립했다.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에서는 도입 품종을 대체하고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23품종의 국내 육성 감귤 신품종이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재배 적지가 북상함에 따라 관련 연구도 함께 진행 중이다. 

 

다. 화훼산업 육성

 

▲ 우장춘 박사     ©농촌진흥청

광복 후 우리나라의 화훼 생산은 ‘무(無)’에 가까웠다. 우장춘은 우선 화훼 연구의 전담부서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밥도 못 먹는 이판에 꽃이 다 무엇이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원예시험장 내 화훼과를 두고 각종 화훼 350종(온실화훼 약300종, 노지화훼 약 50종)을 수집하여 보존하게 했다.

 

그중 주요 작물은 장미, 카네이션, 국화이며, 자생식물 개발은 1957년 우장춘 지시에 따라 1958년부터 시작했다.

 

현재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장미, 국화, 나리, 심비디움, 선인장, 팔레놉시스,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거베라, 카네이션, 포인세티아, 칼라 등 12개 품목, 710품종의 신품종을 개발했다.

 

또한 신품종 보급 사업을 추진한 결과, 2018년 현재 장미 30%, 국화 32.1%, 난 18.2%, 비모란 선인장 100%, 나리 9%, 글라디올러스 30.2%, 프리지아 60.4% 국산 품종을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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